고인돌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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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이야기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다

고인돌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사냥의 필요성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 논농사와 밭농사로 얻어진 곡물의 양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로 곡물의 양이 많으면 저장하여 다음해 수확할 때까지 먹을 것을 준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이었고 실제로는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물과 채집, 사냥, 고기잡이 등을 통하여 먹을 것을 해결하였습니다. 사냥은 식량과 가죽을 얻기 위한 선사인의 중요한 생업활동으로 구석기시대 이래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에는 속도가 느린 대형동물이 주 사냥감이었지만 신석기시대에는 날쌘 소형동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구석기시대의 직접 대상물을 향해 찌르는 창보다는 돌화살촉이 보다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창과 도끼가 근거리용 수렵도구라면 활과 화살은 원거리용 수렵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돌화살촉의 등장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발명품이었습니다.
고인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잡은 사냥감은 무엇일까? 고고학적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뼈를 보면 사슴, 노루, 멧돼지, 돼지, 산토끼 등과 텃새, 철새 등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 중 사슴과 멧돼지는 그 수량이 많아 신석기시대 이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던 육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교적 몸집이 크고 간편한 방법으로 사냥할 수 있어 매우 바람직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습니다.

그릇 이야기 풍년을 담아내는 그릇, 토기
민무늬토기 등 다양한 모양의 토기사용

그릇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인 물건입니다. 물론 나무로 만든 그릇도 많이 사용되었으나 쇠로 만든 그릇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흙으로 만들어 불에 구워 만든 토기가 가장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토기에 음식물을 익혀 먹음으로써 소화흡수가 잘 되고 각종 질병을 예방하여 살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인돌시대에 만들어 썼던 토기를 문양이 없어 민무늬토기라 합니다. 이 토기는 굵은 모래나 곱돌가루를 섞은 진흙으로 빚어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구운 납작토기로, 대개 적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산이나 들에서 주워 모은 나무열매나 농사를 지어 생산한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저장용 항아리, 운반하기 위한 운반용 항아리, 음식물을 요리하기 위한 그릇, 조리된 음식을 먹기 위한 식기용 그릇 그리고 무덤에 부장하기 위한 토기 등이 특별히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쓰임새에 따른 토기 모양
저장(貯藏)

밭과 논에서 추수하여 거둬들인 곡식은 일상용으로 먹기 위해 저장하여 두고 이듬해 농사를 위해 특별히 종자도 보관해야 합니다. 생산된 곡물을 저장할 필요에 따라 저장용 토기의 형태가 변형, 발전하였고, 동물의 침입을 막거나 썩지 않도록 잘 보관할 수 있는 창고와 같은 별도의 저장시설도 고안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천연의 저장시설인 지하식 구덩이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리(調理)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그릇은 높이 20cm 내외의 작은 항아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릇의 외면의 흔적을 관찰하면 주위에 불에 탄 흔적들이 관찰되는데, 노지에서의 조리방법은 안정적으로 놓은 후 그 주위에 불을 피워 끓이는 방법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식사(食事)

밭에서 잡곡 재배, 논에서 쌀 재배, 동물사냥, 견과류 채집 등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사람들의 먹거리는 곡류, 어패류, 푸성귀, 육류, 도토리 등 현재의 일반적인 먹거리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안정된 식량공급으로 요리한 음식을 먹기 위한 식사용의 소형 그릇을 제작하고 사용하였습니다. 그릇의 크기는 5~11cm정도이고, 대접, 접시, 보시기 등 용도에 따른 형태의 분화를 볼 수 있습니다.

돌도구 이야기 돌을 깨뜨리고 갈아서 원하는 모양 제작

고인돌시대에는 구리와 주석, 납과 같은 새로운 소재로 도구를 만드는 금속문화의 도입이 있기도 한 시기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대부분 여전히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청동기는 제작의 어려움, 재료의 희귀성 등 기술적인 문제로 인하여 지배자의 꾸미개 또는 의기로 만들어진 반면, 일상도구는 아직 석기 또는 목기가 주로 사용되면서, 신석기시대에 비해 목적에 맞게 크기와 형태가 세분화되며 전문장인에 의한 전문화와 돌도구의 다양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석기 제작은 먼저 적당한 크기로 석재를 쪼갠 뒤 형태를 만들게 되는데, 처음부터 갈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1차 조정을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숫돌을 이용하여 마연하게 됩니다. 숫돌인 지석은 마제석기의 형태를 잡거나 도구의 날을 세울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석재의 재료로는 화강암, 점판암, 유문암, 응회암, 안산암, 혈암 등으로 매우 대양하게 사용되었으며 장신구에는 천하석재와 벽옥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돌도구의 종류
  • 나무의 벌목이나 가공

    돌도끼, 돌끌, 돌대패

  • 농사에 필요한 농경구

    돌칼, 돌낫, 갈돌과 갈판

  • 사냥에 필요한 수렵구

    돌창, 돌화살촉

  • 무기와 장신구

    간돌검, 옥

청동기 이야기 첨단기술이 적용된 청동기

돌로 만든 도구만을 사용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처음으로 구리와 주석이라고 하는 금속을 알게 되고, 이것을 이용해 비파형동검이나 청동창, 청동화살촉, 거울 등의 청동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청동기는 채광-정련-용범제작-주조라는 일련의 공정을 거쳐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며, 재료의 희귀성으로 인해 일반주민들의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유력자만이 지닐 수 있었던 특수품 또는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사용되었습니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분포하는 한국의 청동기는 무기가 대부분이고, 공구, 의기, 꾸미개, 차마구 등의 기종이 있는데, 무늬로서는 기하학무늬가 주로 장식되었습니다. 무기로는 검(劍), 투겁창, 꺽창, 화살촉 등이 있습니다.

마음 들여다보기 마음을 표현한 바위그림

바위는 영험함과 생명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바위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과 여러 가지 문양들을 일컬어 암각화라 하는데, 암각화란 단단한 돌의 날카로운 부분이나 금속제의 도구를 사용하여 쪼거나 긋기 또는 갈기의 기법으로 바위의 표면에 그림이나 문양을 새겨놓은 것을 말합니다. 바위에 새긴 이유는 돌(石)은 생명의 원천이며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여수 오림동 암각화에는 인물상 2인, 간돌검, 물상 등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검(劍)은 생전에 자신을 지켜주고 권위나 신분을 상징하는 의미로 내세에서도 축은 사람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암각화를 새긴 것은 죽은 사람 뿐만 아니라 무덤 자체도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물상은 조상에게 무엇인가 바치고 있거나 기원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며, 조상에 대한 장례의식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돌고래 등의 바다짐승을 주제로 하여 전면을 쪼아내어 조각하였고, 다른 한편에는 들짐승들의 윤곽 외에도 호랑이, 사슴, 돼지, 산양 등의 여러 가지 짐승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잡고 싶은 육지동물이나 바다 동물들을 그렸고, 기억하고 싶은 사건들을 새겼으며 일상에서의 바람이 실현되기를 기도드리는 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당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며 그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